세계적인 브랜드엔 저마다의 탄생 사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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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브랜드엔 저마다의 탄생 사연이 있다?
  • 인터넷뉴스팀
  • 승인 2011.01.1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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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로그 및 코카콜라 우연한 발견에서 발전한 제품
지마다 특별한 사연을 담은 제품들로 지금은 세계 최고 브랜드로 성장

[ 하루를 보는 인터넷 뉴스! NAC미디어 / webmaster@nacpress.com ] 지금은 고유명사가 될 정도로 유명한 제품들의 첫 등장이 처음부터 거대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실수로 혹은 우연한 기회에 발명하거나 발견하게 돼 더 크게 성장하게 된 브랜드 탄생의 뒷이야기는 재미를 넘어 작은 변화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파고들었던 창업자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브랜드 중에서 재미있는 탄생 일화를 가진 브랜드로 어떤 게 있을까?


코카콜라는 한 약사의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남북전쟁 참전용사이자 아틀랜타의 약사였던 존 펨버턴은 여러 가지 약제들을 조합하는 것을 무척이나 즐기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오후 두통을 경감시킬 응급제를 찾던 중 그의 냄비 안에서 캐러멜 색의 향기로운 액체를 섞어내게 됐다. 그는 이 액체가 완성되자 이웃의 제이콥 약국으로 가지고 갔고 그 곳에서 혼합액에 탄산수를 더한 후 약국의 손님들에게 시범으로 맛을 보게 했다. 손님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이 새로운 음료는 뭔가 특별하다는 평을 내렸다.


결국 제이콥 약국에서는 이 음료수를 한 잔에 5센트로 시판하기 시작했다. 펨버턴의 회계 담당자였던 프랭크 로빈슨은 이 혼합물에 코카-콜라라는 이름을 붙여 자신의 독특한 필체로 적었고 그 글자는 오늘날까지 그가 썼던 그대로 전세계에 판매되고 있다. 처음 코카-콜라가 대중에게 선을 보인 첫해에 코카-콜라는 약 하루 9잔 정도 판매됐지만, 100년여가 흐른 지금 코카-콜라는 일년에 거의 400리터의 원액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잠깐의 실수가 큰 성공으로 이어진 대표적인 케이스는 켈로그다. 병원과 건강관리 시설을 겸하고 있던 배틀크릭 요양원에서 근무하던 W.K 켈로그와 의사이자 요양원을 경영하던 그의 형, 존 하비 켈로그 박사는 환자들을 위한 채식위주의 식단 개발에 힘쓰고 있었다. 두 형제는 퇴근 후에 밀을 롤러에 밀어 넣어 그레놀라 형태의 음식을 만들곤 했다. 어느 날 잠시 다른 일을 하느라 자리를 비우고 돌아왔을 때 형제는 밀 반죽이 말라있는 것을 발견하고 켈로그 형제는 이것을 불에 달군 롤러에 밀어 넣어 압축을 했고 각각의 낱알들은 눌러져 얇은 푸레이크 조각이 나오게 됐다.


1894년에 W.K 켈로그는 형에게 푸레이크 형태의 식사를 영양이 부족하기 쉬운 요양원 환자들에게 제공해보자고 제안했다. 곧 환자들은 요양원을 퇴원하고 나서도 우편으로 푸레이크를 주문하게 되었고, W.K 켈로그는 푸레이크 형태로 만들어진 밀을 포장 판매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는 옥수수로 푸레이크를 만들면 밀 푸레이크보다 더 맛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1906년에 현 켈로그사의 전신 ‘배틀 크릭 토스티드 콘 푸레이크’ 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되고 훗날 이 회사는 켈로그사가 됐다.


불편함을 개선하려다 새로운 산업의 시초가 된 케이스도 있다. 세계적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는 독일 한 작은 마을 제화점에서 탄생했다. 1920년 독일의 한 마을에서 제화업자로 일하던 아디다슬러는 오래 걸으면 발바닥이 아프고 관절에 무리가 오는 가죽바닥 운동화에 불편함을 느껴 발이 편한 운동화를 개발하기로 마음먹고 세계 최초 고무바닥 운동화를 만들었다. 이 고무바닥 운동화를 시작으로 스포츠 신발이 등장하는 발판이 마련됐다.


이후 아디다스가 본격적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였다. 전설적 육상 선수 제시 오웬스가 아디다슬러가 개발한 스파이크 슈즈를 신고 무려 4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것. 스포츠화 시대를 활짝 열었던 그 사건 이후 육상화뿐만 아니라, 축구화 농구화 등을 개발하면서 아디다스는 글로벌 스포츠 기업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을 하게 됐다.

기울어진 가업을 위해 발벗고 나선 고등학생이 세계적인 브랜드를 탄생시킨 경우도 있다. 블록완구 대명사 ‘레고’는 덴마크 시골 빌룬트의 작은 목공소에서 탄생했다. 1930년대 중반, 목공소에 큰 불이 나자 아버지의 목공소일을 도왔던 고등학생 고트프레드는 기울어버린 가업을 이어가기 위해서 불탄 후 남은 자투리 나무들을 모아 오리 장난감을 만들어 팔았다.


솜씨 좋은 고트프레드의 손재주 덕분에 오리 장난감이 반응이 좋아서 이후 자동차, 배 등 다양하게 장난감의 종류를 늘려갔다. 덴마크어로 ‘재미있게 놀아라’라는 말에서 딴 레고(LEGO)라는 상표를 붙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사업이 커지면서 나무가 아닌 플라스틱으로 모형을 만들어냈고 이것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레고의 시초가 됐다.

우연한 기회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사례로 신발 브랜드 크록스의 ‘지비츠’를 꼽을 수 있다. 평범한 가정주부인 셰리 슈멜저(Schmelzer)는 구멍이 숭숭 뚫린 앙증맞은 신발의 열혈 마니아였다. 2005년 어느 날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아이들의 신발을 보고 구멍에 별 생각 없이 단추나 나비매듭 같은 자잘한 물건들을 끼워 장식했는데, 그것을 본 아이들은 무척 좋아했다. 갖가지 액세서리로 장식된 크록스를 신은 아이들을 보고 다른 아이들도 너도나도 갖고 싶어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남편 집 지하실에서 본격적으로 장식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크록스용 액세서리 생산 업체인 지비츠가 탄생하게 됐다. 2006년 10월 지비츠는 현금 1000만달러에 크록스를 인수했고 리치와 셰리 부부는 크록스의 자회사가 된 지비츠의 사장과 디자인 책임자를 맡게 됐다.

막대사탕의 대명사 츄파춥스도 빼놓을 수 없다. 막대사탕은 52년 전 미국에서 처음 선보인 후 현재까지 세대를 아울러 사랑을 받는 사탕의 왕자다. 큰 눈깔사탕을 입에 넣은 아이들이 사탕을 주체하지 못해 침을 흘리며 쩔쩔매는 것을 보고 아이들을 위해 포크로 찍어먹을 수 있는 사탕이 없을까 고민하다 막대기에 꽂으면 좋겠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에서 탄생했다.


무심코 뜯어 버렸던 컬러풀한 포장지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디자인한 작품으로 출시부터 명품의 조건을 타고난 셈이다. 오늘날 츄파춥스는 세계 막대사탕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1982년 처음으로 소개되어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제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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